발명된 광기의 역사
- 들어가는 말
발견과 발명은 어떻게 다를까? 사전적으로 발견은 이미 있었던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인식함이다. 발명은 전에는 있지 않았던 물건을 새롭게 만들어냄이다. 발견은 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딴 대륙처럼, 그 전에도 있었지만 발견자를 통해 이름을 부여받는다.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전에도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수많은 원주민들이 그보다 더 앞선 발견자였지만 그들이 지었던 이름들은 배제되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만 불리게 되었다. 에디슨은 번개라는 자연현상을 유리구 안에 있는 필라멘트에 옮겨놓는 발명을 했다. 이전까지와는 다른 물건을 발명해냈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역사적으로 광기를 발견했다고 믿게 하는 권력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기 이전에 이미 광기와 이성의 경계는 있었다는 믿음을 어떻게 역사적으로 사람들에게 세뇌시켜왔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나는 이성과 광기의 경계지음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라고 본다. 그 형태가 있지 않았고, 쓰임새가 없었던 물건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발명이라면, 광기는 발견보다 발명에 가깝다. 광맥은 발견하면 쓰임새를 얻는다. 금맥을 발견하면 그 이후에 금을 캘 수 있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발명은 광맥을 파는 드릴과 같다. 누군가는 광맥을 효율적으로 파기 위해 드릴을 발명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권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광기를 발명했다. 이 책에서 푸코는 결국에 광기 그 자체에 대한 발견이 아니라 광기를 발명한 과정과 그 이면에 권력을 향한 의도에 관하여 파헤치고 있다. 그리하여 광기가 어떻게 담론으로 체계를 잡고, 그 담론을 실행하여 광기를 규정한 자가 광기를 규정당한 자에게 행하는 훈육과 억압의 방식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던 권력을 집중시키는 지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2. 발명 1 : 이성의 고유한 영역이 있다는 환상
고전주의적 의미의 광기가 정신과 육체에 초래하는 어떤 변화도 정신착란의 담론(delirious discourse)의 존재보다 더 특수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착란의 담론이 육체적 변화, 행위나 말의 기괴함을 기저로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광기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정의는 정신착란이다. : “정신착란(delirium)이라는 말은 항적을 의미하는 ira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deliro는 항적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137)
이성의 고유한 영역의 한계지점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이성의 영역에서 이탈했을 때,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광기, 즉 정신착란으로 이탈했을 때는 이성적이지 않은가? 고전주의적 의미에서 광기는 정신착란과 구별되지 않는다. 정신착란의 어원을 살펴보면, 항적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항로를 따라서 잘 가고 있던 배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가야할 곳이 아닌 다른 방향에 들어선 순간부터 다시 그 항적에 복귀하는 순간까지를 광기의 구간으로 설정한다. 어원적으로 보면 ‘이성’의 영역은 광기의 영역보다 매우 협소함을 볼 수 있다. 출항을 하고 항해를 할 때, 어느 한 순간도 이성의 영역, 항적에서 멀어지면 안 되는 굉장히 정신과 육체적으로 신경을 써야한다. 이성의 고유한 영역 위에서 잠시만 이탈해도 곧 그 것은 다른 이들에게 광기로 간주된다.
15세기에 광인들을 모아서 육지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물을 사이에 두고 광인들을 광인선에 태웠던 것처럼 이성과 광기의 분리는 곧 공간의 분리까지 일으켰다. 동유럽인들의 설화로 내려오는 드라큘라가 강이나 바다를 건너지 못하듯이 물은 그 당시 유럽인들에게 분리를 의미했다. 단순히 광기의 치유 목적이 아니라 이성적인 자신들과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난 광기를 내비치는 이들과의 분리로 자신들의 권력을 지켜낸 것이다. 17세기에는 광기의 영역이 더 넓어져서 급기야 게으름 또한 광기의 한 범주를 차지하게 된다. 경제 호황기 때는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는 이들은 광인이 되었고, 감금이라는 벌이 주어졌다. 그러나 경제 불황이 닥치면 게으름이나 일하지 않음이 광기의 범주에서 슬그머니 이성의 범주로 다시 복권된다. 개인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불황이 닥쳤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는 논리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밝혀 광인들을 사면한다.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화 초기에 빈민은 다시 한 번 국가라는 유기체를 위해서 일역을 수행했다.(294)
그 기저에는 경제 불황기에 인건비를 줄이려는 권력자들의 속내가 숨어있다. 또한 광인들이 감금되어 있는 시간동안 들어가는 재화가 부담스러운 정부 권력자들의 속내도 숨어있다. 감금을 풀어주고, 광기에서 해방시켜준다고 하여 그들이 취직을 할 수는 없다. 다시금 광인으로 불렸든, 이성을 가졌지만 일을 할 수 없는 부랑자가 되든, 그들은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갈 뿐이었다. 이성도 광기도 권력을 가진 이에 의해 유리한대로 취사선택되는 굉장히 탄력적인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성의 고유한 영역은 이처럼 권력에 의해 탄력적으로 행사되었고, 그에 따라 광기의 영역도 탄력적이었다.
3. 발명 2 : 광기에 대한 이중적인 공포와 불안
그러나 이러한 비이성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불안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감금에 대한 반작용 속에서 공포와 불안은 이중의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사람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감금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259)
18세기 말에도 사람들은 이성의 영역과 그에 따른 광기의 영역이 권력에 의해 재배치되는 지 모르고 감금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이 공포와 불안은 2가지 형태로 함께 도사리고 있었는데, 한 가지는 자신이 광기에 한순간이라도 떨어져서 감금당하게 될 공포와 불안, 다른 한 가지는 이미 광인들이 감금되어 있는 공간에서 도사리고 있는 악이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있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는 비존재, 즉 있지 않은 것을 명백히 보여주는 역설적인 것이었다. 궁극적으로 감금의 의도는 광기를 극복하거나 없애는 데 있지 않았다. 감금은 광기를 억압하여 사회적 질서로부터 사회 내에 어떤 자리도 갖고 있지 못한 형제들을 제거하기 위한 장치였다. 감금의 본질은 비존재의 드러남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러한 드러남을 보여줌으로써 감금은 광기를 억압하고 말살했다.(159)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기에 대해 공포나 불안이 있지 않았다. 광인들은 집도 없이 떠도는 이들이나 혹은 가난한 이들처럼 광기에 휩싸였다고는 하나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회적 질서라고 불리는 이성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광인선에 강제로 태워 바다에 띄우는 수용소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물이라는 분리의 상징으로 인해 자신들의 생활이 지켜질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감금’의 공간이 바다에서 육지로 옮겨왔다. 광기에 한 순간이라도 사로잡히면 어느 순간에 감금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사람들의 마음에 서서히 옮아갔다.
도시의 중심부에서 이성을 향유하며 자유롭게 삶을 영위하다가 어느 순간, 주변부에 세워진 감금수용소에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그 안에서 악이 어느 순간, 세어나와서 자신도 광기에 휩싸이게 될 수 있고, 그러면 감금이 될 것이라는 끝이 없는 사고의 순환만으로 사람들은 광기에 휩싸일만 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권력에 의해 배제되는 광기의 영역을 철저히 배격하고, 권력에 의해 질서라는 명목 하에 이뤄지는 이성의 영역을 더욱더 신봉하게 되었다.
4. 발명 3 : 권력 집중
프로이드는 수용소의 존재로부터 환자를 해방시켰다. 이제 환자는 수용소에서처럼 자신을 해방시켜 주는 사람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드는 환자를 수용소의 존재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로부터는 해방시키지 않았다. 프로이드는 수용소의 권력을 재조직했고, 그 권력을 의사의 손에 넘겨줌으로써 극대화했다.
수용소로 분산되었던 광인들에 대한 권력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라는 이성에 의해 더욱 집중되었다. 환자는 수용소의 감금에서 풀려나왔으나, 권력이라는 감금에서는 풀려날 수 없었다. 프로이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광인을 환자로 바꾸었다. 사회와 완전히 공간적으로 격리되어 있던 이들을 해방시켰다. 단, 의사들의 앞에서만 해방시켰다. 프로이드는 광기를 무의식에서 조절없이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되었을 때 드러나는 현상으로 보았다. 이 광기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을 올바른 방식으로 해소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올바른 방법은 환자가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의사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 되었다.
5. 나가는 말
광기는 발견된 것처럼 발명되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성과 광기가 어떻게 분리되고, 이성이 고유한 영역이라는 환상, 감금의 공포와 불안, 마지막으로 광인들의 지위가 환자로 격상되는 것조차도 결국에는 권력과 이성의 결탁이었음을 보았다 이성의 세례를 받고 태어난 우리 현대인들의 앞에 광기의 역사는 이성과 권력이 결탁한 역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틀에 미셀 푸코는 ‘의심’이라는 구멍을 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성중심의 세계에 발명된 것들이 발견된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 의심하고 재고해볼 수 있는 시야가 이 책을 통해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