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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eck/경제

노동과 자본의 운명적인 엇박자 스탭 = 자본주의

by 스파르탄 2021.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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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성 교수의 경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는 명쾌했다. 경제에 대해서 굴러가지 않는 머리로도 충분히 그 의미를 따라잡게 배려해준 정의였다. 기억나는대로 대강 적어보자면 그의 자본주의에 대한 논지는 이러하다. 


경제에서 사람은 노동이고 돈은 자본이다. 경제는 노동과 자본이 결합해서 생산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의 이해관계는 그들의 결합으로 생성된 재화나 서비스의 분배를 두고 이해관계(공정한 관계가 아닌)에 놓여있다. 이 이해관계로 작동하는 자본주의에서 장하성 교수는 역사적으로 자본이 노동을 지배해 왔다고 본다. 이 지배의 역사를 그는 정의롭지 못한 자본에 의한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이해관계의 충돌과 노동 계급의 소외, 억압의 측면을 강조하며, 자본을 가진 자본가에게 민주적인 정치를 통해 노동자에 대한 정의로운 분배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명쾌하나 사람 사는 세상이 어찌 이리 따악~ 명쾌할까~ 하면서 그와 나 사이에 엇박자가 나기 시작했다.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내 머릿속과 자본주의 위에 터한 몸둥이는 그저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쩌들었었나보다. 그의 책을 읽다가 정치적인 색채를 떠나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샤람이 먼져다.” 그래, 사람이 먼저다. 장하성 식으로 하면 절대다수의 노동자가 먼저인,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고나 할까. 정의로운 한국적 자본주의의 실현 가능성을 더듬는 글을 읽자니 복불복의 차가운 가슴이 “낭만”으로 채워졌다. 일본영화 중 ‘셸 위 댄스’의 장면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춤선생의 발을 수시로 밟았던 장면이. 또한 춤선생과 연습을 하던 나머지 보조를 맞추고 성숙한 춤쟁이가 되어가는 모습까지도. 그런데 현실의 자본과 노동이 추는 춤은 거의 매번 엉성한 놀림으로 서로의 발을 밟고 더 이상의 보조를 맞추고 싶어하지 않는 투쟁의 관계가 아닌가. 춤은 파트너와 보조를 맞추는 예술이지만, 자본과 노동의 춤은 서로를 이기려는 비보이 댄스배틀과 더 닮았다. 자본을 가진 자본가는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효율을 중시하고, 노동력을 가진 노동자는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 생기는 엇박자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함께 춤을 추고, 또한 결과물도 만들어내지만 언제고 서로의 발을 밟을 수밖에 없는 현실. 자본가는 자본을 아끼고자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힘을 아끼고자 하는데, 이 두 짠돌이 사이에서 대부분은 자본을 가진 자가 춤을 리드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끝없는 댄스배틀과 같은 자본과 노동의 이해관계의 충돌을 "셸 위 댄스?"(함께 춤출까요?) 라고 서로에게 물을 수 있는 서로의 발을 밟지 않는 고상한 춤사위로 전환시킬 것인가? 장하성 교수는 이 문제에 골몰했고, 평등한 정치로부터 파생되는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자본주의의 청사진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절대 다수라고 장하성 교수가 지칭한 노동자'만' 잘 사는 나라가 아니라 노동자'도' 함께 잘사는 나라여야 하지 않을까. 함께라는 교집합에서 자본가'도' 국민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본가는 악이고 노동자는 선하지만 약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단순하고 명쾌하나 충분히 복잡하게 다뤄져야만 할 것이다. 자본의 축적이 부정의한 방법에 의해 쌓아올려졌다면, 자본가는 악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저 프레임 안에서 자본가는 몸을 사리게 되기 때문이다. 

 

  성숙한 자본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 두 가지가 필요할 성 싶다. 첫번째는 정부와 정치권의 일정 집단에게'만' 부여되던 부정의한 분배의 문제를 바로잡는 확실한 법집행과 입법, 두번째는 이 법의 테두리보다 더 조밀한 윤리의 측면에서 자본과 노동의 댄스에서 서로의 발을 밟았다면 사과하고, 스텝을 잘못 밟았노라고 다시 맞춰가보자는 성숙한 태도이다. 어찌되었든 작은 시각이나 큰 시각으로 우리는 모두 한 경제계 안에서 생산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협력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댄스의 스탭룰, 그 스탭룰에 철저히 정직하게 따라가면서 협력하는 태도의 배양이 성숙한 자본주의를 만들어가는 한국의 과도기적 상황 하에서 무사히 뿌리내려 가기를. 이전의 남의 발을 밧다리로 걸고 넘겨야만 하는 댄스배틀 자본주의에서 서로의 스탭을 번갈아서 조화를 이뤄가는 사교댄스 자본주의로의 도약에 이바지할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 상념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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