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라는 게 참 희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받았던 감각경험들이 오감을 통해서
뇌에까지 경주해서 뇌 시냅스를 때리면 딩-하고 종을 친다.
그러면 온통 뇌가 그 감각들을 전두엽에도 보내고
얘가 활성화되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그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와 씨- 차오를대로 차올라서
꼭 그 들어온 역순으로 생각이 뛰쳐나가고 싶어 한다는 거지.
목줄을 한 투견처럼,
이제 막 정수기 위에 꽉찬 물통을 채워놓은 것처럼,
눈앞에 치킨을 둔 나처럼,
막아논 보를 묶어놓은 힘쎈 줄앞의 도끼처럼,
줄을 풀고, 레버를 당기고, 손이 튀어나고, 도끼가 내려쳐지는 것처럼
생각이 뛰쳐오고, 쏟아지고, 뜯어먹고, 보가 터진다.
감각이 들어오고 생각이 나간다는 것은,
세상으로 받았던 대출금을 이자까지 쳐서 갚는 것 같다.
한없이 대출을 땡기다보면, 어느 순간에 글을 쓰는 일이 버거워질 때가 많다.
블로그에는 아직 차지도 않았는데 써제끼고 흩뿌리다 만 '임시저장'의 빨간 숫자가 쌓여가고,
노트북에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팔삭둥이 같은 논문글이 여물지 못해 안타깝지만
그래도 내 자식인지라 이뻐서 또 보고, 또 보다보면 어느 새 성장해 있다.
글쓰는 게 아무래도 비유적으로도 대출을 갚는 일이고,
현실적으로도 우리 집의 대출을 갚는 고마운 작업이므로
지속적으로 이중의 대출으 갚고 있지만
이중고라고 생각이 들지 않느 것은
"빚은 내 인생의 빛"이란 좌우명을 가진 아바이의 공이 클 것이다.
남한테 빚지지 않고 사는 삶이 가능한가.
나의 생각도 결국에 남들이 싸질러논 글에, 영상에, 말에, 혹은 몸짓에
내가 물든 것이고 글은 물 들어온 김에 싸질러놓는 것 뿐인데.
자수성가, 자족성이라는 말은 환상이다.
그 누구도, 설혹, 완전한 자족을 이뤄낸 그 누군가가 있더라손 치더라도
자족을 이루기까지, 그 자족을 구현하며 산다는 건 타인과의 의존없이는 불가능하다.
자기 돈으로 합당한 가치를 지불했다손 치더라도. 그 돈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기에.
삶도 그럴진대, 어디 한쪽, 슬쩍 발가락 한쪽이라도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에게 기대었다고 해서 우리는 홀로 우뚝 서는 것만 좋아하지, 남들과 같이 서는 것은 좀 체 좋아하지 않는다.
같이 좀 서서 기대면 어떨까.
자수성가. 홀로 우뚝 서면 무에 그리 뽐내고 싶을까.
코기토 를 말하기 전에 고기라도 좀 같이 꿔먹으면서 인생을 논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사람을 존재하게 한다기보다, 내게 생각을 하게 준 사람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
태어나서 싸고, 먹고, 제발로 걷고 하기까지 무력한 나를 키워준 부모,
또 나의 삶의 여정에서 수없이 많이 만났다가 멀어진 이들,
그들이 빚어논 것이, 좀 못났기는 해도 나라는 존재가 아닌가.
감사하다.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뭐든지, 날것 그대로, 회로 먹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군상들을 바라보며 (0) | 2024.11.23 |
---|---|
논문 (0) | 2024.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