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이라는 말은 참 손쉽다. 나 이제 운동하기로 결심했어. 라고만 하면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이미 한 것과 같은 프라이드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결심이 토대로 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은 항상 흔들리는 감성의 파도를 탄다. 이 감성 위에 쌓아올린 결심 또한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 결심을 태워오던 파도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처절히 부서질 때 발생한다. 결심은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행동을 옮기는 동력을 잃어버린다. 작심삼일이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결심이 가진 이 취약성 때문에 바른 행동, 나를 위해서 꾸준히 발전하는 행동은 머리(마음)와는 다른 결에 터를 닦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몸이다. 생각이 아니라 직접적인 움직임이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결심했기 때문에 몸이 움직이고, 그 몸이 움직이는 것이 결심을 지켜낸 것이라는 루틴이다. 결심했기 때문에 몸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였기 때문에 결심이 지켜진 것이다. 이것은 일순간 같은 걸로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르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 실제로 자기 몸을 끌고 헬스장에 가는 것은 생각이 아니다. 생각은 항상 안전한 상태에 머물기를 원하고,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싫어한다. ‘귀찮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마음의 상태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
결심은 겉보기에는 굉장히 고결해보인다. 이제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어, 혹은 아주 삿된 말로, 성공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은 그저 마음이 긍정의 파도를 탔을 때뿐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고결함은 마음이 외부의 스텝을 밟는 순간에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은 결심이 실체화되는 순간들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그 결심들은 서서히 혹은 갑자기 부서진다. 행동의 동력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순간에 니힐리즘(허무주의)에 빠진다. 허무주의는 다른 게 아니라, 몸짓보다 생각이 항상 앞서는 상태이다. 어떻게 하자는 생각이 아니라, ‘왜 해야만 하는가’의 물음을 제시하며 몸에 브레이크를 건다. ‘헛짓’에서 ‘짓’은 고결한 결심보다 아주 보잘 것 없는 헛짓거리로 보인다. ‘왜 이 짓을 해야만 하지?’라는 물음으로 그에 대한 답을 찾을 시간을 스스로 부여한 듯이 보이지만, 답은 찾을 수 없고, 그 답을 찾으려는 시간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휴식도 아닌, 그저 허무하게 흘러가는 시간이다.
결심에만 몰두한다면 허무에 빠질 뿐이다. '왜 사는가'처럼 사람을 의미있게, 동시에 허무하게 만드는 질문도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을 제기하되 답이 없으므로 자기만의 답을 제시하고 넘기면 그만이다. "나는 내가 재밌기 위해서 산다! 단,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삶에 큰 위해를 끼치지 않는 선까지." 내 삶의 의미는 내 공리주의적인 한도 내에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이다. 단순화시킨다. 그 뒤에 처음에 가졌던 의미를 또 곱씹으며 전진하기 보다, 일정 기간 '왜'라는 질문을 제거하여 행동의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편을 택한다. 그 편이 행복을, 일을 성취할 확률이 높다. 투자나 인생의 전반적인 스토리가 그러하다. 노력, 재능, 시간, 운 이라는 4가지 요소 중에 컨트롤할 수 있는 몸의 노력, 찾을 수 있는 재능, 들일 수 있는 시간이 있고, 가장 중요한 운이 등장한다. 노력, 재능, 시간은 머리로 찾는 게 아니라 몸으로 찾는다. 글쓰기, 운동, 그 어떤 것도 뇌내망상의 레벨로 성취된 적은 없지 않은가? 구체적인 계획과 생각이라는 것도 실제 움직이는 삶에 기반해야 개똥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뇌내망상인 결심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말고, 실행하는 몸에 더 신경을 곧추세우라. 뇌내망상이 피어나기 전에 결심은 분명하게 정하고 바로 뛰어넘어 가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115킬로그램의 몸무게가 부담되어 100킬로까지 살을 빼겠다. 라고 결심을 했다면 중요한 건 몸의 실행이다. 먹던 양을 줄이고, 운동을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1일1식과 3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 부족한 영양소가 생기지 않게 보충제 복용하기. 단순하게 이 정도면 된다. 복잡한 삶의 노이즈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친구가 와서 치맥, 누가 와서 삼쏘 하다보면 몸무게는 정체될 뿐이다. 결심 이후에 단순화하는 몸의 루틴잡기. 이것이 복잡다단한 투자나 여타 머리를 쓰는 일에서는 좀 다르게 적용될지라도 기조는 분명하다. 결심 이후에 타인이나 내 내부에서 들리는 노이즈에 두 귀를 막고 오직 자신의 선택에 몸을 맞기고 우직하게 나아갈 일이다. 물론, 퍼킨 도박쟁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우직하게 강원랜드로 진군하진 말아야지.
요약하자면, 1) 결심은 하되 단순하게 하고 잊어라. 2) 결심보다 실제 몸으로 망상인 결심을 현실로 만들어라. 3)타인과 자신의 노이즈는 참고는 하되 자신의 주된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게 좌시하지 마라. 4) 단, 타인의 삶에 크리티컬한 위해를 가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는 마라.
이것이 내삶의 단순한 기조렸다. 복잡한 삶을 접어서 뚫는 단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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