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글쓰는 게 좋아 죽다가도 글 한 줄 말기 힘든 날이 있다. 하루 종일 김밥 한 줄에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날이 있다. 암막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도 아파서 침대와 운명공동체가 되는 날이 있다. 찬란한 빛을 피해서 우울을 베고 누워 두툼한 불안에 뒤척이는 날도 있다. 언제 이런 둔중한 것들이 나를 누르고 있는지 이불 밑으로 더듬어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왜 이런 둔중한 것들이 나를 짓누르고 있을까. 원인과 결과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비가 오기 전엔 무릎이 욱신거린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기가 말처럼 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우울과 불안이 내 의식의 현관문을 부수고 이리 막무가내로 쳐들어오진 않았을 터였다. 단순을 추구해야 하는데 끝없이 복잡한 계에서 숙고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처음에 우울의 주기는 회전초밥집의 인기메뉴처럼 가끔씩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그때마다 그 맛을 봤고, 그 순(巡)이 지나고 나면 맛볼 기회가 아득했기에 입맛만 다시고 제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 앞에 다가오는 이 인기메뉴는 맛보기가 꺼려지도록 계속 쌓였다. 손님이 찾지 않는, 거의 망해가는 회전초밥집처럼. 이번에 우울을 소화하지 않으면 또 차례가 돌아온다는 압박감에 우울은 불안을 동반했다. 1+1, 우울이 후라이드라면 불안은 양념이었다. 그것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배달되는. 불안과 우울도 자꾸만 소화를 시키지 않고 ‘다음에’를 외치다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숙제처럼 압박감이 들었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와 있는 꼴을 보면 이제는 젓가락질도 하기 싫은 지경에 이른다. 또 자꾸만 그 두 가지를 가만히 앉아서 먹다보면 뇌도 배가 부르다. 이제 그만 먹고 싶은데 자꾸만 우겨넣는 양상이 반복되면 역동적으로 살아갔던 삶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남은 평생을, 초밥집의 컨베이어벨트 앞에 앉아서 밀려오는 불안과 우울을 감내해야 할까. 전혀 아니다. 그때에는 이제 말해야 한다. “사장님, 이 접시에 있는 초밥은 너무 상했는데요? 치워주세요.”라고. 정말 치명적인 접시들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나 이제 더 이상의 우울은 허용하지 않겠음을 천명해야 한다. 이 거부는 단순히 관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긍정의 힘을 믿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는 것이 바로 ‘단호한 거부’의 시작이다.
약을 먹으면 체한 것처럼 밀려나가지 않던 우울들이 빠져나갈 통로가 뚫린다. 소화제처럼 단숨에 뚫리지는 않으나, 며칠 혹은 일주일 만에 막힌 부분을 뚫는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되지 않는 걸 억지로 부여잡지 말고 하루빨리 약을 처방받아서 먹어야 한다. 정신과 상담과 진료를 받는 일과 약 처방은 일종의 대행서비스이다. 화폐를 주고 서비스를 구매하는 단순한 것이므로 어떠한 심정적 괴로움을 스스로에게 더할 필요는 없다.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올 수 없는 지경에 빠졌을 때는 정말 약이 구호책이다.
긍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긍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감정이 막힌 채로 있기 때문이다. 사막에 폭우가 내리고 홍수가 날 듯하지만 다음 날이면 흔적도 없이 다 사라지듯이, 감정이란 건 사막같아야 그래야 탈이 나지 않는다. 감정을 느껴도 사라져야만 건강하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는 주위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마음을 반석처럼 만들어서 감정을 담아두게 말고 그물망처럼 온갖 틈을, 여유라고 할 만한 공간들을 만들자. 타인과 나 사이, 나와 나 사이에. 모든 것을 Yes할 필요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No할 필요도 없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항상 기억할 것은 그 모든 결정에 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가령, 초밥이 상했으면 그 자리에서 괜히 다른 사람이 불편할까, 억지로 먹고 탈나는 인생을 살지 말자는 이야기다. 초밥이 상했으면 상했다 말하는 걸 내 삶의 기본값으로 삼아야 불안과 우울이 뇌에 쌓이지 않고 빠져나간다. 그래, 가끔은 나처럼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울이 지속될 수도 있다.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그 안에서 감정들이 요동을 치며 나를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물량으로 또 우울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일렬종대로 닥쳐올 수도 있다. 그럴 때, 너무 힘들 때는 약을 먹고, 쉬자. 담담히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자. 우울을 베고 불안을 덮고 자는 일이 평생 가지는 않을 테니까. 눈물로 베개를 젖게 해도 다음날 보면 싹 마르는 것처럼, 나와 당신의 우울은 또 마음의 틈새로 비껴 사라지고, 우리의 삶은 그것마저도 양분으로 삼아 꽃필 것이다.
반응형
'에세이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자포자기, 지피지기, 호연지기 3사이클 (0) | 2021.02.15 |
---|---|
습관 만들기에 대한 대단한 나의 착각 (0) | 2021.02.05 |
조급함에 대하여 (0) | 2021.02.02 |
결심이란 망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0) | 2021.01.22 |
음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내) 인생에게 고함 (0) | 2021.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