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물루스와 예수의 비교
- 로물루스와 예수의 탄생 이야기
로물루스는 아이네이스 혈통이었던 알바롱가 왕가의 정통성을 물려받는다. 그는 알바롱가 왕가의 공주였던 레아 실비아와 군신 마르스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레아 실비아는 삼촌인 아물리우스의 눈을 피해서 사제로서 살아가고 있었고, 여사제는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비우스의 서술에서 레아 실비아는 전쟁의 신이었던 마르스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쌍둥이를 낳았다. 여사제가 출산했다는 것은 알릴 수 없었으므로, 실비아는 아들들을 상자에 태워 강가에 떠내려 보냈다.
떠내려 온 이 두 사람을 암컷 늑대가 거두어 젖을 먹여 키웠다는 설이 있다. 암컷늑대가 두 아이를 키우던 중에 농부였던 파우스툴루스가 자신의 아내인 아카 라렌티아에게 데리고 왔다. 리비우스는 이 설화에 다른 해석을 덧붙이는데, 암컷 늑대와 라렌티아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이다. 농부가 아내를 암늑대로 부르던 것에서 착안하여, 아내의 혼외자식이라는 것이었다. 이 아내가 농부의 피를 물려받은 아들들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데려온 아들들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의 탄생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보았다.
그렇다면 예수의 탄생은 어떻게 기술되었는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마태복음에서는 족보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유대인인 예수의 족보를 예수의 탄생이야기 앞전에 배치함으로서 그 ‘정통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뒤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예수는 성령으로 수태된 것이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저 족보는 혈통으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단절되어 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과 예수는 혈통으로 완전 무관하기 때문이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6) 마리아의 족보가 아니라 요셉의 족보이므로 예수의 혈통이 요셉과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의 저자가 그 족보에 예수를 올려놓은 까닭은 유대인으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비약의 성격이 다분하다. 동정녀인 마리아가 아이를 낳았던 것은 어떻게 보면 감추어야할 수치였을 수도 있었지만 성령으로 수태된 것으로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자라난다.
로물루스와 예수의 탄생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왕가의 족보를 잇고 있다는 정통성과 동시에 신의 아들이라는 탄생비화이다. 물론, 로물루스의 어머니인 실비아는 혈통 또한 적실하고, 예수의 혈통은 요셉과는 무관했지만 말이다. 신적 권위를 가미하기 위한 장치로, 두 건국자 모두 신의 아들이라는 왕의 자손이라는 권위보다 큰 신성을 부여하는 탄생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로물루스의 어머니는 아이네아스의 혈통으로 전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는 요셉이라는 부계의 족보로 그 전통성을 인정받았다. 두 이야기 모두 결론적으로 왕가의 혈통과 신적 권위가 결합한 형태의 탄생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2. 12명의 릭토르와 제자
로물루스는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12명의 릭토르들과 항상 동행했다. 리비우스는 이것이 레무스와 토지를 나누던 새를 이용한 점술에서 착안한 것이라기보다는 에트루리아의 12부족을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릭토르는 묶다라는 뜻으로 이들 에트루리아의 결속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고 나서 12제자들을 모은다. 12라는 숫자가 야곱의 아들들의 숫자 12부터, 12부족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12명의 제자들의 혈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로물루스와 마찬가지로 예수는 같은 수의 제자들을 모았다. 이 12라는 숫자에는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일까?
이들이 12라는 숫자를 상징으로 쓰기 이전, 기원전 2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12진법을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는 국가 전체가 태음력을 썼는데, 1년에 12번씩 달의 모양이 보름달에서 다음 보름달까지 기간이 12번 바뀐다는 것을 발견했다. 달의 모양이 1년에 12번씩 규칙적으로 줄어들고 커지는 것을 보고, 이들은 12진법을 자연의 질서를 조장하는 수 체계로 정립했던 것이다. 신이 만들어 놓은 자연의 질서를 상징하는 12라는 숫자는 그래서 일종의 완전함을 의미했다. 신의 창조와 그 자연질서는 비록 윤달이 있었으나 규칙적이었다.
로마 건국시기에 지중해 지방에 12부족이 있었던 것과 12명의 릭토르의 숫자와 이스라엘의 12부족, 예수의 12제자의 일치는 ‘완전함’을 의미하고 있다.
3. 구름 위로 승천
로물루스는 시민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왜냐하면 시민들에게 경작을 위한 땅과 거주할 땅을 무상으로 분배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유민이나 노예나 심지어 범죄자마저도 땅에서 솟아난 사람들이라고 하여 그들을 로마건국의 주역으로 보고 존중해주었다. 반대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원로원은 땅을 무상으로 분배한 로물루스의 행동을 시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리비우스가 이렇게 기술하였던 까닭은 바로 로물루스의 승천이 단순히 신화적 해석일 뿐이고, 그가 원로원에 의해서 암살을 당했다는 해석이 더욱 신뢰도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르스 평원에서 로물루스가 군대를 사열하던 중에 먹구름이 끼고, 번개가 치면서 로물루스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가 구름 속으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리비우스는 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해석하여, 원로원들이 그를 암살하고 그 시체를 숨겼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예수 또한 로물루스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대중들에게 큰 존경과 인기를 누렸다. 그 까닭은 바로 그가 선포한 복음이 같은 문화권 내에 있는 대중들에게 “은혜의 해” 곧, 희년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9) 김균진은 이 은혜의 해를 레위기 25장에 선포된 ‘희년’으로 연결시킨다. 희년은 매 50년마다 돌아오는데, 자기 땅이 없는 자에게는 땅을, 땅을 잃어버린 자들에게도 땅을 돌려주는 해이다. 또한, 종을 풀어주는 해였는데,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로마의 압제 아래에서 수많은 민중들은 이 희년 선포를 듣고, 국가가 해방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우러러 보았던 것이다. 그런 나라가 올 줄 알았던 군중들이 자신들이 생각한 나라가 오지 않았다고 분노하여, 그를 권력자들과 함께 작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다. 그러나 예수는 성경에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은 뒤 3일만에 부활하여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에서 구름 위로 승천하였다.
로물루스와 예수의 공통점은 바로 대중들을 위한 건국자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었던 평화로운 나라를 이루려고 하다가 한명은 승천이나 암살, 다른 한명은 십자가형이나 승천하였다. 이 둘이 건국하려고 했던 나라는 실제로 나라의 모양을 제대로 갖추어 제국이 되었던 로마와 어떠한 형태도 없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는 나라라는 차이를 보인다. 로물루스는 대중의 사랑을 받고, 권력자들의 시기를 받았지만 예수의 생애 마지막은 대중과 권력자들에게 모두 미움을 받았다. 로물루스는 당대에 나라를 건국했으나, 예수의 사상과 삶은 후대에 국경을 초월하여 전파되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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