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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스(pietas)를 구현한 모델로서 아이네이스
피에타스란 감사, 사랑, 정의, 책임, 동정, 공감 등의 이상적인 정신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피에타스는 기독교식으로 하면 경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신탁을 역사 안에 실현해나가는 것과 그 신탁의 실현에 함께 하는 인간들을 올바르게 통솔하는 정신인 것이다. 아우구스투스의 통치기에 이상적인 지도자의 네 가지 덕목 중에 이 피에타스가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피에타스는 그 중에 통솔자와 비통솔자 사이의 특수한 결속을 의미한다.
그 당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는 그의 사후에 원로회와 민회가 신으로 선포할 정도로 로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이후 로마의 황제들이 황제명을 아우구스투스와 카이사르만 썼던 것으로 보았을 때,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은 신적 권력이 로마 황제에게 대대로 부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초가 바로 아우구스투스이고, 그가 구현한 피에티스이다. 그 당시의 로마의 중앙집권화를 성공한 아우구스투스와 로마의 건국 서사시에서 피에타스가 강조되었던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아이네아스는 트로이아인들을 이끌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시칠리아, 마침내는 로마의 초석이 되는 라티움에 이르기까지 방황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신탁을 받고 그곳을 떠돌았기 때문에 이는 단순한 방황이나 패배한 유민들과의 생존만을 위해 유랑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탁을 받은 망명자로서 자신과 미래의(과거의 시점으로) 로마건국을 위한 초석을 닦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네아스는 카르타고의 여왕인 디도와 사랑에 빠지고 로마 건국을 위한 비전과 개인의 행복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갈등한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디도는 아이네아스가 떠나자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이다. 그러한 사랑을 뒤로 하고 다시 여정을 떠나는 아이네아스의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을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자로 보지 않느데에 있다. 그가 거느린 트로이아 유민들과 가족의 운명과 미래에 이루어질 신탁을 역사 안에 실현시키는 자라는 자각이 스스로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 모델이 아우구스투스에게 일종의 모델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아우구스투스가 대중들에게 자신의 통치의 정당성과 신으로부터 로마를 통치하도록 위임받았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자연스레 녹아들게 하기 위해서 아이네이스를 널리 익히도록 하지 않았을까?
김기영은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 형상화에 아우구스투스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리더십의 본보기를 아우구스투스에게 제시했다”고 본다. 그러나 조금 더 꼬아 생각해보면, 아우구스투스가 자신의 통치의 정당성과 충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과거의 아이네아스를 현재의 자신에게 투영시킨 것이라고 본다. 베르길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에게 아이네아스를 모델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를 권력 작동을 위해 ‘이용’한 것이 아닐까.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23년에 아우구스투스 앞에서 아이네이스 2권, 4권, 6권을 낭독했다. 그 후에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19년에 그리스와 소아시아로 답사를 떠났다. 떠나기 전에 친구인 바리우스(Lucius Various Rufus)에게 만약 자신이 귀국하기 전에 죽으면, 아이네이스를 불태워 없애달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여행길에 열병을 얻어 귀국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이 책을 책으로 간행하라고 바리우스에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대작을 없애려고 했고, 황제는 이 대작을 보존하려 했다. 어떤 이해의 불일치가 발생했던 것일까?
현대인의 시각으로 넘겨 짚어본다면, 발터 벤야민이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라고 했던 것처럼 로마문명의 제국주의의 역사를 야만의 역사로 보고 베르길리우스는 그 역사를 정당화했던 자신의 작품을 없애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타국을 침략하여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은 로마인과 특히, 아우구스투스에게는 영광이나 정복당한 나라들에게는 굴종과 불행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야만(바르바로이)을 정복했다는 로마의 관점이 현대에 이르러 야만스럽게 느껴진다.
아이네아스의 피에타스의 구현이 망명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초석이라는 그 당시 로마의 이데올로기는 대제국을 이룬 뒤에 “신화-역사”를 자기 식으로 편찬했던 일본제국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지 좀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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