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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Check/문학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2번째 리뷰

by 스파르탄 202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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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의 어원적인 분석 

  소마는 멋진 신세계에서 복용하기만 하면, 불안, 초조, 분노, 슬픔 등의 안정을 깨는 감정들에서 벗어나게 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일종의 마약이다. 알파는 신세계의 체제 유지를 위해서 소마를 이용하여 알파 계급은 자신들이 먹고 싶을 때 자유롭게 복용하는 반면, 델타와 엡실론 계급의 시민들에게는 급료로 소마를 지급한다. 생각하는 힘을 없애고, 자신들의 시스템 안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그들의 일한 삯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이러한 소마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는 성경구절과 같이 이 책의 멋진 신세계(원제목: Brave New World) 또한 셰익스피어의 소설 ‘템페스트’에서 가져온 제목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소설의 초입부터 마지막 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시키고 있는 ‘소마’ 또한 어딘가에서 그 의미와 용도를 차용해 왔을 것으로 보고 소마에 대해서 그 기원이 어디에까지 있는가에 흥미가 생겼다.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이 된 것 같은데, 인도 베다 종교의식에서 썼던 환각제이자 신의 이름이 소마이고, 고대 그리스어로 소마는 ‘몸’이란 뜻이 있다. 

  인도에서 제사에 올리는 특별한 음료의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이 음료가 신의 이름으로 추앙을 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소마에는 환각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소마의 재료가 되는 식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긴 하지만, 현대에는 그 자료가 유실되어 어떤 식물인지는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다만, 소설에서 소마의 용례에 따라서 그 분량을 정해서 마시면 그 자체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옮겨주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진통작용을 하며 안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인도의 힌두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기도 한 소마는 멋진 신세계에서도 문명인들에게는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테리 이글턴이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에서 ‘신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고 말했다. 신이 인간의 관념에 사로잡혀서 때때로 위정자들의 체제유지를 위해서, 혹은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의지의 대상으로 신이지만 외양이 바뀌었던 것처럼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소마는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체제유지를 하게 하는 매개체로 성공적으로 기능하는 신이다. 소마가 멋진 신세계에서 신의 역할과 동시에 대중들을 무지에 처하게 하는 환각제로 쓰이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두 번째로 소마의 뜻은 그리스어로 ‘몸’(σŵμα)이라는 뜻이다. 바울의 로마서에서 몸에 대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등장하는데, ‘죄는 죽을 몸에 왕노릇 할 수 있기 때문에’, 죄의 도구로 몸은 쓰일 수 있으며, 따라서 영이 거주하는 인간의 몸은 죄를 짓는 것을 죽여야만 한다고 로마서 8장 14절에 등장한다. 이러한 영과 몸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은 기독교인들에게 몸, 물질, 세상을 악한 것으로 바라보게 하는 근거로 쓰인다.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야만인인 존은 끝까지 소마를 먹는 것을 거부하고, 레니나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할 만큼(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창녀라고 말할 정도로)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의 가치를 소마(몸)보다 우위에 둔다. 결국, 등대에서 외로이 있다가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 소마를 먹은 후,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괴로워하여 자살에 이른다. 소마를 먹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그 당시 문명인이며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몸에 대한 가치폄하하고 숨기려고 하는 모습을 비판한 것은 아닐까? 

 

  소마만을 먹고 있는 자들과 자신들이 소마를 먹고 있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권력자들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는 소마를 아예 먹지 않고, 자신은 거룩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도 하는 것이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의 목적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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