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는 제목 그대로 수많은 변신(變身)이 등장한다. 신, 인간, 동식물 사이의 수많은 신체의 변화와 그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신화들에는 표면적으로 신체가 변한다는 가변성만을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내밀한 서사에서 역설적으로 가변적인 겉모양의 변화와 달리 불변하는 것들을 다룬다. 이를 테면, 제우스의 신성은 인간의 몸을 입어도 불변이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형격인 티스베와 피라무스의 이야기에서도 둘은 죽지만(변화) 그들의 사랑은 불변한다. 오베디우스가 모은 변신 이야기들에는 핵심 가치는 불변한다. 신적인 능력, 완전한 사랑은 쉬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관념이 그 당시의 문화권 안에서 통용되었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어떻게 처녀 아테나와 동정녀 마리아가 각각 그 시대와 문화권에서 신적 완전함으로, 불변하는 신성으로 간주되었는지에 대해 비교하며 탐구해보고자 한다.
먼저 여신 아테나의 어원은 수메르어 아나타(anatha), 즉, ‘하늘의 여왕’이라는 의미였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 지혜의 여신이자 수호의 여신으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숭배되었다.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아테나는 수호의 여신의 의미로 아테네인들에게 강조되었다. 아테나는 이름 끝에 파르테노스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의미가 바로 ‘처녀’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처녀 아테나를 모신다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 신화에 의하면 아테나는 포세이돈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메두사라는 여인과 성관계를 맺은 것에 분노하여, 메두사를 죽이려고 했다. 포세이돈은 메두사를 지키기 위해 아테나와 싸웠다. 이 신화에서 신전은 말 그대로 성스러움, 완전성, 불변성을 상징하고, 성관계는 상스러움, 불완전성, 가변성을 상징하고 있다. 아테나가 자신의 처녀성을 지키는 것과 신전에서 성관계를 맺은 포세이돈과 싸워 쫓아낸 것은 처녀성에 신적인 완전함을 연결짓고 있던 그 당시 아테네인들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왜 이러한 처녀성에 대한 강조가 일어난 것일까? 그 당시 역사적 정황으로 보자면, 파르테논 신전은 BC447년에 시공하여 BC432년에 완공되었다. 이 시기에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전쟁에 일어났다. 이 전쟁은 BC431년에서 BC404년까지 지속되다가 아테네 델로스 연합의 패배로 전쟁은 끝을 맺는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아테네의 동맹인 이오니아의 반란을 추동했고, 아테네는 ‘아이고스 포타모이 해전’에서 스파르타의 함대에 의해 궤멸하며 이 전쟁의 종지부가 찍혔다.
신화의 전후관계는 알 수 없으나 비유적으로 해석해보면, 그 당시 아테네인들이 처녀성 = 국가수호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이며, 메두사는 바다의 신이었던 포르키스의 딸이었다. 두 사람이 아테네의 신전에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동맹을 의미할 수 있고, 아테나가 그들과 싸웠다는 것은 아테네가 그들과 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의미했다.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패배하였으나, 아테네를 수호하고자 하던 아테네인들이 파르테논 신전에서 처녀성을 숭배함으로 조국수호를 염원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정복되지 않는, 지키는 것은 곧, 아테네가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음을 의미했고, 자기 도시가 다른 나라에 굴종하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아테네인들이 한번도 정복되지 않았던 아테나 여신을 섬기게 된 까닭은 이러한 역사적 신화적 정황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신화 중에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를 갑자기 겁탈하려고 할 때에도 아테나는 그의 정액을 피해, 허벅지에 묻은 그의 정액을 올리브잎으로 떨어내 버렸다. 침략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테나가 그 아이를 입양해 왔고, 이 때에도 아테나는 그 처녀성을 유지한 채, 아들을 얻은 것이다. 이 아들의 이름은 에릭토니우스였고, 아테네의 왕인 암픽티온을 몰아내고 아테네의 6대 왕이 되었다.(BC1487년~1437년) 에릭토니우스는 아테나 숭배를 강화하고, 그의 상징은 ‘뱀’인데 파르테논의 아테나 신상의 방패 뒤에도 뱀이 있었다.
아테나가 아테네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예수의 어머니인 동정녀 마리아는 가톨릭 교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 숭배의 이유는 그녀가 ‘처녀성’을 간직한 여인이었다는 상징성에서 출발한다. 어떤 원죄를 가진 남성과의 관계없이, 처녀성을 간직한 채 성령으로 예수를 수태했기 때문에 그녀는 하늘의 어머니로 불린다. 아테나가 수메르어로 하늘의 여왕으로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의 부활삼종기도문에 “하늘의 모후(Regina Caeli)”라는 칭호가 마리아의 이름 앞에 붙었다. 또한 마리아는 그 처녀성을 간직한 채로 하느님을 낳았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렸다.
그녀는 가톨릭 교의에서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수태되었던 것으로 그 처녀성을 자기의 아버지와 무관한 것임을 나타내었던 것처럼 원죄가 없이 탄생했다고 여겨진다. 마리아의 두 번째 유의미한 칭호는 “원죄 없는 잉태”(Immaculata)이다. 어거스틴에 의해서 제기된 원죄론은 아담의 태초의 범죄로 인해서 그 이후의 인간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야만 하는 원죄를 가진다는 교의였다. 후대에 마리아는 비오 12세에 의해서 1854년에 원죄에서도 벗어난 이로 선포되었다. 예수의 어머니로 남편의 원죄뿐 아니라 자기의 원죄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교의가 만들어졌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테네인들은 아테나에게 처녀성 = 국가수호의 관점에서 침입자들을 물리쳐 달라는 역사/신화적 염원을 가지고 있었다. 마리아 또한 가톨릭 신도들에게 처녀성을 간직한 성모로 숭배를 받았는데, 이는 원죄로부터 무관하며, 성령으로 예수를 수태했음에 그 숭배의 동력이 있었다. 이 여신과 원죄 없는 여인의 상징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지점은 예술작품과 성서의 기록의 유사성이다. 피렌체의 산드로 보티첼리는 <팔라스와 켄타우로스>란 작품을 그렸다. 여기에서 팔라스는 파르테노스와 마찬가지로 ‘처녀’를 의미했고,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로 신화에서 결혼식에서 신부를 겁탈하려고까지 하는 욕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반인반마로 그려진다. 이 그림에서 아테나는 켄타우로스의 머리채를 쥐고 제압하고 있는데, 그녀의 처녀성은 결코, ‘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힘을 가진 수호를 의미했다. 이 켄타우로스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에 대적하는 적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처녀성 또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여성성의 연약함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켄타우로스의 욕정과 뱀으로부터 비롯된 원죄는 닮아 있다. 신적 옳음을 따르지 않는 ‘죄’로부터 마리아의 처녀성은 예수를 원죄로부터 수호했다. 마리아의 처녀성은 원죄의 침략으로부터 아기 예수와 자기를 지키는 강인한 성질의 것이었다. 따라서, 아테네인들의 아테나 숭배와 가톨릭 교인들의 마리아 숭배는 강인한 처녀성으로 자신들을 외적과 원죄로부터 지켜 보호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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