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들어가는 말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원제: Naissance de la biopolitique)은 이전 강의인 『안전, 영토, 인구』와 연결되어 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기획은 이 두 강의에서 생명관리정치 전반에 걸친 넓은 영역에 대한 강의였다. 푸코는 자신의 기획이 서론격인 자유주의 통치성의 분석에만 할애되었다고 밝힌다. 그렇다면 통치성이란 무엇인가?
통치성은 『안전, 영토, 인구』의 4강에서 ‘통치’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 유형을 주권이나 규율 등 다른 모든 권력 유형보다 끊임없이 우월한 상태로 이끌어간 과정(안전, 영토, 인구162-165)으로 설명한다. 푸코는 국가에서 통치성은 푸코가 이전에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에서 각각 제시된 정신의학에서의 격리기술, 형벌체계에서의 규율기술, 의학제도에서의 생명관리정치(안전, 영토, 인구175, 515)와 같은 테크놀로지, 기술로 본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푸코가 규정했던 것과 덧대어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통치성의 개념은 “인간의 품행을 인도하는 방식”(264)이다. 이 방식은 합리성을 가진 분석이다. 분석의 대상은 통치인데 크게는 권력이다. 권력은 어떤 특정한 주권자가 소유하거나 실체가 아니라 인구 혹은 생명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권력관계이며 정치이다. 푸코는 정치를 ‘상이한 통치술들의 상이한 연동을 수반하는 작용’인 동시에 ‘그런 상이한 통치술들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이라고 설명한다.
푸코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1강부터 3강까지는 이전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뤄졌던 통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며 이전의 통치와 이제부터 다루게 될 자유주의 통치성이 어떤 방식으로 변형을 이루게 되었는지 서술한다. 4강부터 10강까지는 푸코가 밝혔던 데로 생명관리정치의 한 분야로서 자유주의를 연구할 것, 이라는 계획에 따라 고전 자유주의(자연주의)에서 신자유주의인 독일의 질서자유주의, 미국의 무정부자유주의로의 통치성의 이행을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11강부터 12강에서는 18세기의 법권리로 자유를 보호받았던 주체와 다르게 신자유주의에서 발명한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주체, 그리고 자유주의적 통치테크놀로지와 상관관계에 있는 ‘시민사회’이 출현한다.
2. 자유주의 통치술의 분석 방법 : 1-3강
자유주의 시장에서 통치받는 자들은 ‘국가의 통치가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으로 대표되는 ‘간소한 통치’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1-3강에서는 간소한 통치를 해야한다는 담론이 어떻게 해서 구성되었는지를 밝힌다. 푸코는 자유주의를 관통하고 있는 이 담론이 역사적인 인과론에 의해 보호받아왔지만 자연적이지 않고 인공적이라고 본다. 이 자유주의 통치성이 출현하게 된 계기는 『안전, 영토, 인구』에서 사목통치에서 국가이성으로 이행되었던 국가이성이라는 국가의 통치실천을 내부에서 규칙화할 수 있게 해주는 특정한 합리성으로부터 사유해야 한다.(24) 이 특정한 통치방식의 합리성은 국가의 부강함을 목표로 하였다. 국가가 부강하면 인구는 영토 내에서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이 참이라는 진실체계로 모두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8세기에 이르러 근대 통치이성에 중요한 변형이 일어났는데, 이전까지의 통치에서 알아채지 못했던 통치술을 제한하는 원리가 확립되었다.(32) 이 원리는 16~17세기의 공법이 가지고 있던 일종의 형벌적 형태였다. 이 비판적 통치이성은 어떻게 과도하게 통치하지 않을 것인가에 집중이었다.(36) 이를 ‘통치이성의 자기제한’이라고 설명한다.
푸코가 통치이성의 자기제한을 논의할 때에 법으로 과잉통치를 제한하는 공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되었다.(71) 공권력의 행사에 어떻게 사법적 제한을 가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는데, 이런 구상에 두 가지 길이 제시되었다. 첫 번째는 공리의 길, 법적이고 연역적인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길은 모든 가능한 정치체제 아래에서 불가침의 법권리로 존속하는 인권에서 출발하여 주권자의 옹립을 경유하여 통치성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간략하게는 법으로 과도한 통치를 막는 방법이다. 두 번째 길은 통치실천 자체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통치가 관여하여 무용하게 되는 지점이 어디인가? 혹은 간단하게 말하여, 그 통치는 유용한가? 라는 유용성의 문제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다.(72) 이 두 길에서 전자는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로, 후자는 미국의 무정부적 자유주의로 각각 이어진다.
푸코가 제시한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좁은 개념의 자유이다. 이 자유는 ‘나는 자유롭게 행동할 자유를 네게 부여한다’는 의미의 자유이다. 그러나 통치자가 비통치자에게 ‘자유하라!’ 라는 명령이 아니라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조건들의 관리와 조직화이다. 18세기의 국가 통치이성은 자유를 소비한다. 시장의 자유, 판매자와 구매자의 자유, 소유권 행사의 자유, 논의의 자유, 경우에 따라서는 표현의 자유가 피통치자에게 부여한다. 이 자유는 소비되기 때문에 한편으로 통치이성은 자유를 생산해내야 하는데, 자유를 생산한다는 행동 자체는 제한, 관리, 강제, 협박에 기초한 의무 등의 확립을 의미한다.(101) 자유가 있는 곳에는 부자유가 함께 있다. 이 부자유는 피통치자들에게 책임을 지우고, 제한을 하고, 강제한다. 그렇게 부자유한 사건이 일어나서 억압이 일어날 때, 비로소 국가통치이성이 부여할 수 있는 자유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자유에서 자기비판적(실제로 자기라고 부를만한 실체가 없지만) 통치이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는 모든 이해관계 내에서 발생가능한 위험으로부터 개인과 집단에게 안전을 보장한다. 자유와 안전이 새로운 통치이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104)
3. 신자유주의의 틀 분석(질서 자유주의와 무정부적 자유주의) : 4강-10강
푸코는 어떻게 이러한 자유와 안전의 상관관계에 놓인 자유주의가 18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설명하고 있는 틀이 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연구했다. 어떤 계기로, 어떤 위험 앞에서 ‘안전’을 꾀하고자 자유주의 통치술이 변하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4강의 중반부에서 8강에 이르기까지 푸코는 전체주의와 나치즘의 위기에서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가 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을 심도있게 서술한다. 독일 질서주의자들이 직면한 나치즘의 위험은 ‘국가권력의 무제한적 증대’였다.(172) 이 무제한적으로 증대하는 통치권력 앞에서 어떻게 자유주의 통치술로 위험을 제한하려 했을까? 자연과학 내에서 유용하다고 여겨졌던 일종의 합리성을 사회와 경제에 적용하는 개입기술을 통해서 제한했다.(178) 질서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에 의한 감시’라는 자유주의 최초의 정식을 벗어버리려고 했다.(181) 국가 통치이성은 시장의 공간을 감시함으로 그 자유를 제한시켜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질서 자유주의자들은 이 한정을 역전시켜서 시장의 자유를 갖추자고 제안한다. 국가의 통치가 지나치다는 것에서 오는 국가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단언했다. 질서자유주의자들이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행한 전복은 이런 식이었다.
전통적인 자유주의 학설 내에도 변화, 변환, 반전이 일어났다. 시장의 원리가 교환에서 경쟁으로 이동했다.(183) 전통적인 자유주의 하에서 국가는 교환을 행하는 사람의 자유가 존중되도록 시장에 개입하여 감시했다. 가치와 가치의 교환이 시장의 본질이었다. 그러나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본질을 경쟁으로 대체했다. 이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생산자의 생산물과 소비자의 화폐 사이에서 일어나는 등가교환이 아니라, 경쟁이라고 주장했다. 국가가 생산하는 자의 생산물에 대해서 관여했던 감시 방법과 달리,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경쟁체제에 위해를 가하는 요소들, 독점과 같은 현상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185) 자유방임의 시장의 무한한 경쟁체제에서 어떤 것이 발생했을까?
필연적으로 자유방임적인 시장 내에서 경쟁은 불평등을 발생시켰다. 점차 이 불평등에 대해서 사람들은 불만을 토로하게 되었는데,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구매력이 떨어진 각 개인들에게 질서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한 안전망은 사회정책이었다. 그런데 이 사회보장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들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상태로 이끄는 고전적인 주권자의 통치가 아니었다. 질서 자유주의자가 담론화한 사회정책은 개인들이 그 내부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대면할 수 있는 일종의 경제적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216) 그리고 그 의도는 각 피통치자들의 안전이 아니라, 시장경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푸코는 사회정책이 목표하는 바는 더 이상 국가의 부강함이 아니었다. 사회정책의 목표는 오직 경제성장뿐이었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가 국가의 감시를 받는, 국가의 토대 아래에 있지 않고, 시장경제가 국가를 오히려 이끌게 되었다. 『안전, 영토, 인구』가 신자유주의를 맞이하여 안전한 영토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라는 실체가 없는 곳이 사람들이 터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본질로 변환되었다.
이 사회정책의 거부로부터 미국의 무정부적 자본주의가 출현했다. 미국은 독일과 다르게 국가가 자유주의를 통해 자기제한을 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요청으로 국가가 건립되었다.(304)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존재방식이자 사유방식이었다. 통치자가 피통치자에게 사용하는 하나의 통치술이라기보다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일정한 관계의 유형이었다.(306)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특성은 ‘인적자본론’이다. 독일의 질서 자유주의가 사회정책을 각 개인들을 시장경쟁에서 탈락하지 못하도록 시장 경쟁 안으로 확보한다면, 미국의 무정부적 자유주의는 인적자본론으로 시장경제의 영역에서 다른 사회의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인적자본론을 설명하기에 앞서 출현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무정부적 자유주의자들은 아직 경제학적으로 분석되지 않는 노동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노동에 대한 연구를 ‘일종의 백지’(308)상태로 보고 분석했다. 로빈스는 경제학에 대해 “경제학이란 인간행동의 과학, 서로 배타적 쓰임새를 갖는 희소 수단과 목적 간의 관계로서의 인간행동을 연구하는 과학이다.”라고 보았다.(314) 경제학이 질서를 지키는 어떤 절차나 과정의 분석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는 과학으로 받아들여졌다. 노동에 대해서 경제적 분석을 한다는 의미는 노동을 하고 있는 주체인 노동자가 자신이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자본, 즉 자신의 노동력, 달리 말하면 미래의 소득으로 이어지는 경쟁력에 대해서 분석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경쟁력은 물론, 경제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노동력이 더 이상 질서 자유주의자들의 그래프에 올라있는 수요공급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경제 주체로 자리 잡았다.(316)
슐츠는 노동자에 대해서 기계라고 칭하는데, 이는 단순히 기계가 시장에서 노동력 자본을 축적시키는 수동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기계는 능동적인 경제 주체로 어떤 시장에 팔리는 노예-노동력의 관념이 아니라, 자유시민-능력의 관념이다. 어떤 시장에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적자본으로 소득을 올리는 경제적 주체가 출현한다. 경제적 주체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불리며 경제적 인간의 의미이다. 신자유주의의 틀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기 자신이라는 기업의 경영자가 되었다.(319) 자본에 의해 노예와 같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이 기업이 되어 자신의 인적자본으로 판매하는 주체로 변화했다.
인적자본의 예로 부모-자녀 관계를 들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교육함으로 앞으로 자녀가 가지게 될 후천적인 인적자본의 축적을 돕는다고 분석가능하다. 또한 푸코가 제시한 결혼에서도 인적자본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피에르 라비에르가 죽기 전에 남긴 수기에서 드러나는 부-모의 인적자본 경향을 볼 수 있다. 아버지가 “너와 잠자리를 갖는 조건으로 네 밭을 경작하겠다”라고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내 암탉들에게 모이를 주지 않으면 나와 잘 수 없어.”라고 응수한다. 서로에게 일종의 성적인 인적자본을 거래함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적자본으로 인해 피통치자였던 이들의 삶의 영역에까지 분석의 격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이는 고전적, 전통적 자유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행보였다.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피통치자들로 정해진 이들은 통치에 대해 시장의 형식을 존중하고 자유방임을 하라고 요구했다. 통치하는 국가이성이 스스로 자기제한을 하여서 자유로운 시장을 해치지 말라고 ‘피통치자’로서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변형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은 통치의 모든 행위를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하는 분석틀로서 시장을 시험무대 삼아서 분석한다. 감히, 할 수 없는 주권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시장경제체제 내의 여러 사람들에게 담론화되고, 그 안에서 논쟁이 일어나고, 결국 통치하는 국가이성이 준다는 일정량의 자유의 소비, 또한 자유의 생산의 매커니즘이 있음을 알아챈 이들은 국가가 주는 자유방임에 의구심을 품고, 그래서 결국 푸코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통치성은 시장이 더 이상 통치의 자기제한 원리가 아니라, 바로 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원리로 본다.(345) 주권자의 통치가 아니라, 통치성이라는 영역을 발명하는데, 이 통치성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을, 경제적 대상에서 경제적 주체로서 통치에 대항하는 주체를 푸코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명명한다.
4. 11강-12강 :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주체)의 출현과 시민사회 모델
경제학에서 주체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만 다룬다는 것은 주체 전반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여겨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주체를 고려한다는 것은 인간학적 방식으로 모든 행동양식을 경제학적 행동양식과 동일시한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것이 의미하는 바는 새로운 개인의 행동에 관한 분석에 부여되는 인지가능성의 격자가 바로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의 주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또한 이 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한에서, 그리고 오직 호모 에코노미쿠스인 한에서만 그 개인이 통치가능화되고, 그 개인에게 영향력이 행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과 개인에게 행사되는 권력 사이의 접촉면, 결론적으로 권력이 개인을 조정하는 원리는 바로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그런 종류의 틀일 뿐인 것입니다. 호모 에코노미쿠스, 이는 통치와 개인의 경계면인 셈입니다.(353)
푸코가 『안전, 영토, 인구』에서 분석한 고전적 사고방식, 즉 통치주권자가 있다는 중세와 17세기까지 발견되는 사고에서 주권자의 배후에는 언제나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 것은 신이었고, 진리였고, 어떤 고결한 이성이었다. 사목통치 주권자는 신의 대리인으로서 피통치자들은 분석이 불가능한 신의 의도대로 통치당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이성의 통치에서 통치 이성의 합리성은 진리였기에 감히 우매한 피통치자들은 알 수 없고 따라야만 했다.
푸코는 신자유주의라는 틀로 주권자가 얼마나 절대적인 신, 이성을 배후로 가졌더라도, 경제학은 무신론적 학문이라는 것, 경제학은 신이 부재하는 학문이라는 것, 경제학은 전체화할 수 없는 학문분야라는 것, 경제학은 통치해야 할 국가의 전체성에 대한 주권적 관점이나 주권자의 관점이 그저 단순히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주권을 행사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표명하기 시작하는 학문이다.(392) 앞서 미국 무정부적 자유주의에서 자본을 다루는 경제학이 변모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변모로 인해, 항상 위에서 아래로 살펴보았다고 여겨졌던 통치 주권자가 피주권자를 대상으로 파악하기 불가능해졌다. 이 보이지 않음, 판단할 수 없음은 비가시성이다. 이 말은 통치 주권자의 이성이 어떤 불완전성으로 인해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비가시성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경제적 주체로서 서로 맺는 이해관계가 너무나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경제학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통치하는 자에게 불명료해야 하며 불명료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더 이상 권력과 통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389)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시장에서 통치를 벗어난 자유를 누리는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국가 통치이성은 자신의 통치를 주체적으로 제한했다기보다는 제한당했다. 통치가 제한당했다는 말은 통치자가 피통치자에 대해 일종의 관용을 베푼다는 뜻이 아니다. 주체적인 시민사회의 통치에 대한 반대담론에 부딪힌 결과라고 본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국가 통치이성이 지나치게 통치하고 있다는 담론이 나오는 공간은 시민사회였고,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들의 연합체로 볼 수 있는 영역인 시민사회가 국가 통치이성이 중심이었던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통치하기’ 목적에 반대했다. 혹은 적어도 통치가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목적에 있어서 유용한 것인지를 언제나 물을 수 있는 담론형성의 장으로 시민사회가 출현했다.
5. 나가는 말
푸코는 크게 총 세 단계로 자유주의 통치성의 역사를 분석한다. 먼저, 첫 번째 자유주의라는 분석틀을 갖추기 이전의 담론에서 통치는 사목권력, 국가이성, 내치국가에서 각각 신, 합리성, 규율로 이뤄지고 있다고 여겼다. 두 번째 자유주의라는 틀로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통치가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담론을 포착했다. 독일의 질서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치는 개입을 차단하려는 질서, 이른바 사회정책을 폈다. 미국의 무정부적 자유주의자들은 인적자본론을 필두로 경제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자유주의적인 분석을 하였다. 그리하여 세 번째,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주체) 개념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통치받는 자들, 대상이었던 자들이 통치하는 주권이 더 이상 파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비가시성을 띔으로 경제적 주체로 자리매김했다. 이 경제적 주체에서 더 나아가 시민사회이론이 등장하는데, 앞서 국가 통치의 자기제한은 자기제한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권력에 의해 통치의 방법이 수정된 것, 즉, 피통치자로 불려왔던 이들이 가진 합리성이 결국 국가의 통치 합리성을 이끈 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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