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인이 나를 보고 좌절한 사람 같다고 했다.
투자도 제대로 목표치만큼 이루지 못했고, 연구하고 있던 학문을 점점 타성에 젖어
그만 둘까 하던 차였다.
해서 뭐하나. 이런 마음이 들었다.
필드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사람을 이롭게 할까? 라는 질문을 내가 전공하는 학문으로 이루려다 보면
암담했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의 행동을 바꾸기 전에 인식을 매만져서 바꿀 수 있다면,
그만큼의 기여만 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하등 쓸데없는 걸 스스로의 재미와 도피처로 삼았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성에 젖어 이것저것 조합해서 쓰는 글들에 나 자신도 확신이 없었고,
교수님과 그 외 같은 그룹의, 타그룹의 사람들이 칭찬을 하노라면
칭찬같이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자포자기의 상태였다.
그렇게 바닥난 상태에서 며칠, 달을 있다보니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포자기하면 멋대로 살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음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반성과 질책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긍정적인 면으로 지피지기라는 가르매가 타졌다.
어떤 소리가 타인과 환경이 나에게 보내는 소음인지,
그중에 어떤 것이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소리였는지
깊이 생각해보았다.
보통, 시간이 지나서 보면 내 결정이 맞았다.
타인의 조언에 따라 움직였던 것들 모두 손익비가 좋지 못했다.
심사숙고한 나의 결정이 결국에는 맞았다는 건,
'결국'까지 소음에 정신이 팔려 버티지 못한 나의 패배였다.
뭔 짓을 하던지, 타인의 조언은 참고해야 하나 그 조언에 휘둘리진 말아야 했다.
나에게 지피지기는 타인을 이기기 위해 타인을 알고 나의 한계를 안다는 의미보다
소음을 구별할 줄 알고, 나의 의지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들여다봄이었다.
투자고 학문이건 내가 말한게 맞든, 틀리든 누구의 기준점이 아니라 기준점은
나로 세워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까지 오자 어느새 호연지기가 들어찼다.
에너지가 제법 다시 밀려오고 있다.
갈팡질팡하던 마음도 심사숙고한 덕분에 사라졌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생활에 적합한 돈을 벌 것이고, 투자를 하고, 학문을 할 것이다.
꾸준히 내 재미를 위해 추구하겠노라고.
세상에 어떤 이로움을 줄 수 있는가를 묻기 이전에 내가 재미를 느낀 것을 세상에 던져놔보고 만약에
조금의 이로움만을 준다해도 그것은 내 나름의 성공일 것이다.
또 어느 날은 자포자기 하겠고, 지피지기의 반성과 성찰의 시간도 가질 테지만 이를 통해 또 한걸음
걸어나갈 호연지기를 뿜어낼 것이기에 잘 진행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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