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 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고, 머리 위의 관을 쓰는 일이 아닌,
가시관이 씌워지는 순간.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내 머리 위로 고리넣기 하듯
던져지는 일들에 위산이 뿜어져나와서 욕지기가 인다.
언제부터 이리 쌍소리 발음을 잘했는지,
나와는 무관한 일들, 그리 원하지도 않는 일들이
깜빡이를 장식품으로 알고 껴들어올 때마다
누를 크락션은 내게 없으므로 입으로 시- 빵-을 외친다.
인생의 사명, 성공에의 의지, 흩날리는 명예, 조막만한 손에 쥘 힘,
권력에의 의지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점철된 고리들이 어렵게 벗으면,
하나가 툭, 또 벗으면 툭, 무심하고 간결하게 내 머리 위에 쌓인다.
이 무심결에 던진 의지들이 머리에 쓰이면, 나는 그 의지에 반응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방전된 미니카마냥 갤갤-거리다 멈춰선다.
죄도 그렇다던가,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던가.
배운게 도둑질이라더니, 남의 손에 든 망치 신세로
여기 저기 내리치다보니 그때마다 형태없던 의지가 결과로 실현됐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고 그러나 누군가의 눈에는 성공적인 결과가 불쑥 나오면
그래서 쿨할 수 있다.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모든 공은 다른 이에게 돌린다.
정말 내가 만든 것이라고는 하나 이 결과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고,
오직 내 반쪽 노오-력만 들어간 반푼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푼이가 내 속에서 나왔다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것을 그럼에도 나는 왜 열심을 내고 있을까?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시발소리를 달고 살면서도 상냥하게 빽도하지 않고
세발짝 더 걸어가는가.
아직도 나는 내가 이 가시관을 억지로 쓰고, 몇발짝 걸으면 성장하고,
뭔가 어찌되었든 불투명한 미래를 조금은 투명하게 닦아줄 거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닦아도 미래라는 건 불투명한 게 분명한데 말이다.
또 알량하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나 정도면 쓸모있는 도구요, 일꾼이라고.
내 나이 이제 서른 후반, 벗어야될 가시관이 이제는 살을 파고든지 오래라
이게 살인지, 뼈인지, 가시인지 모르게 접합되어버렸다.
더 파고들어 손오공 머리에 씐, 긴고아 꼴이 나기 전에
이 관을 벗어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