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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에세이

루틴한 삶

by 스파르탄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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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논문 하루 한장쓰기 루틴을 약 5일 정도 잊고 살았다.

가족을 이끌고, 가족이 있는 곳으로 이곳저곳 옮겨다니다 보니

몸이 녹초가 되어서 뇌도 상상으로 논문 필력을 과시할 뿐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했다.

야심차게 챙겨갔던 책과 노트북은 차 트렁크에서 숙성되었고,

추석을 마치고 아, 또 다시 루틴한 삶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일종의 할일을 못했다는 초조감과 이제야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일찌기 집을 나섰다.

스타벅스에 내 전용 실리콘 방석을 깔고, 오늘의 커피 아이스를 시키고,

채 가방의 물건을 꺼내지도 못하고 오늘의 커피 나왔다는 소식에 바삐 내 컵을 받아오고,

노트북을 열어서 유튜브 뮤직으로 최애곡들을 재생한다.

자 이제, 추석 전으로 멈춰있던 논문(20240000)의 날짜를 업데이트하고

주욱- 써나갔다. 하루 한장, 그 한장을 쓰기 위해 중간중간 가열된 뇌를 식히려 쓸데없는

것들을 보는 시간까지 합쳐서 6시간 정도. 허리는 아프고, 눈은 침침해도 하루에 할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이 뜨끈한 샤워물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이완시킨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러한 루틴한 삶에 박혀서 시지프스의 형벌을 맞아드리리.

알베르 까뮈가 부조리한 삶을 그 부조리한데로 매일을 포기하지 않고 맞아들이는 그 삶의 형식을 예찬했던 것처럼,

나 또한 끝없이 끄적이는 부조리한 논문과 부조리한 삶 사이에서 루틴을 잡아가고 있다. 

끊임없이 울리는 카톡알람소리도 끄고, 걸려오는 전화는 나중으로 미루며 써내려가는 이 논문이

언젠가는 꼭 한명정도에게는 인생에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논문을 다 쓰고 나면, 실제적으로 할 일을 또 준비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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