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는 프랑스 혁명이 평등을 중심가치를 두고 일어난 사건이라는 데 비판적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이 만인이 만인에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혹은 천부인권으로 이미 부여받았다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다. 장자크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자연적으로 인간이라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니체에게는 거슬리는 지점이었다. 니체에게 있어서 평등은 이미 갖춰져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획득해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만인이 평등하다는 언술은 발화일뿐, 만인이 평등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등하다는 것은 니체에게 있어서 동등한 자가 동등한 자에게 어떠한 위해나 부정의를 저지르지 않고, 정의와 공정함으로 대하고, 서로를 도구적 가치가 아니라 그 동등한 인간의 고귀함의 행위이다. 그런데 이 고귀함에 이르는 것이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혹은 태어나기 이전의 천부인권으로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를 니체는 주장한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각각의 계급이 온전히 자신의 신분에 맞게 역할을 담당할 때 국가는 질서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고 한다. 주인은 주인의 일, 노예는 노예의 일을 하고 그 사이에서 어떠한 평등도 없다. 차등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유럽식 계몽주의와 그에 결합한 프랑스혁명에서 만인의 평등을 답으로 내놓았는데,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박약된 자를 노예, 힘에의 의지가 충만하여 고귀함에 이르는 자를 주인으로 명명한다. 즉, 니체의 한 주체의 의지에 따라 그가 삶의 주인인지, 노예인지, 위버맨쉬(초인)으로 갈지, 데카당스에 빠진 노예로 살아갈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만인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평등은 거저 주어져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인생을 살아가기로 의지를 기울이는 주체가 그와 동등하게 고귀함을 추구하는 주체 사이의, 동등한 자들끼리의 정의롭게 분배되는 것이다. 평등은 정의로운 분배, 나눔이라는 실질적인 가치에서 증명되는 것이지 정신적 가치로써의 평등은 삶에서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이상론에 불과하다. 그래서 니체는 교육을 강조했는데, 노예들끼리의 상호인정으로써의 평등을 지향해서 힘에의 의지가 허약한 체로 살아가기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써 힘에의 의지를 증폭해나가는 삶을 살도록 교육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힘에의 의지가 확장될 수록 타인을 억압하거나 폭력을 쓸 것 같아도, 니체는 힘이라는 속성에는 폭력보다 인격적 고귀함이 있어서 오히려 타인에게 배려하고 관용할 수 있는 사치를 부릴 수 있다고 말한다. 힘이 넉넉한 와중에 타인을 돌아볼 수 있는 넉넉함이 생긴다는 것이지, 노예로써 항상 힘없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은 남을 돌아볼 여력도, 남을 도울 일종의 사치도 부릴 수 없다. 획득해나가는 평등에 대해서 니체는 그의 힘에의 의지와 엮어, 사람들이 힘에의 의지를 포기하게 하는 노예도덕에 당착하는 것을 경계하게 하고 주인도덕으로 오히려 힘에의 의지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남을 돕는 사치를 부리는 위버맨쉬에 이르도록 그의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야망을 품게 한다. 그래서, 니체는 거의 두 세기의 역사적 간극이 무색할 만큼 속시원하다.
'책 Check >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카야마 겐의 <현자와 목자 : 푸코와 파레시아> (0) | 2021.01.31 |
---|---|
홉스, 사르트르, 레비나스의 타인을 보는 시선 (0) | 2021.01.30 |
미셸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0) | 2021.01.29 |
데이비드 흄의 <인간의 이해력에 대한 탐구> (0) | 2021.01.28 |
프리드리히 니체의 <안티 크라이스트> (0) | 2021.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