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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를 향한 시선
: 『임상의학의 탄생』의 시선을 토대로
- 들어가는 말
우리는 평생 얼마나 많은 양의 음식물을 입으로 맛보고, 씹고, 즐기고 있을까? 성인 기준으로 28개의 치아를 가지고, 혹은 성인이지만 그보다 못한 숫자의 치아로 얼마나 많은 종류의 음식물을 자르고 으깨기를 반복해왔을까? 수많은 재료들의 조합으로, 다양한 조리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치아는 부수고, 쪼개고, 나누어 수많은 재료들의 즙이 나올 때까지 해체한다. 해체할 때, 씹는 맛을 느끼고, 그 해체의 결과로 나온 즙을 혀가 각종 신경전달물질로 뇌에 전달한다. 결국, 음식의 맛이란 재료와 조리방법의 조합을 하나, 하나 해체하는 맛이다.
푸코의 담론은 입 안에서 해체되는 음식과 같다. 푸코의 담론 이해에 대해 살펴보면, 푸코는 담론을 “일반적인 모든 언술의 영역”이라고 보았다. 화장실에서 나누는 한담부터 각 국가의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모든 언술의 영역은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개별화될 수 있는 언술의 집합체 혹은 여러 언술을 셜명해 줄 수 있는 규범화된 관행”이라고 보았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언술들의 집합체로써 다른 언술들을 통제하고 배제가 가능한 관행은 일종의 문이다. 담론이지만 다른 담론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정도의 권력을 지니고 있는 담론이다.
이 담론이 입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분류되는지 살펴보고, 환자의 시각이 아니라 의사, 병원, 국가적 차원의 시각으로 한 개인의 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서술해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나로 인정되지 않는 구조 안에서 나의 죽음과 법치의학적 시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2. 입 안의 담론 : 공간화와 분류하기
푸코는 “환자를 위해 마련된 차별적인 공간인 병원이라는 제도를 포기한다면 질병이 또 다른 질병을 유발하고 가난이 가난을 부르는 악순환은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현대 사회의 사회구성원들은 병원을 병든 사람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입원하는 곳이라고 본다. 이 시각에 푸코는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병원이 질병과 사람을 같은 공간에 격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건립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가 질병이 있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한다는 담론을 발명한 것은 아닐까?
질병이란 사회적인 공간과는 어울릴 수 없을까? 질병은 자연 그대로의 것, 가장 원시적인 모습이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 충치가 생겼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원주민은 사탕수수를 매우 좋아했는데, 선교사들이 사탕수수를 먹는 원주민을 보고, 원주민이 가진 충치를 본 뒤에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 안에 있는 것을 설탕의 원료였기 떄문이다. ‘설탕의 원료를 씹으니까, 단 것을 먹으니까 충치가 생긴다’라는 언술의 판단은 옳은가? 실제로 단 것을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 그러나 단순히 이에 있는 충치균이 이에 묻어있는 설탕 성분을 먹으면서 이를 상하게 한다는 판단은 옳은가? 어릴 적 이 강력한 담론에 항거하기 위해 이를 닦지 않아도 보고, 맛있는 설탕도 먹어본 결과로 어린 나는 이가 많이 썩었었다. 그리고 그 담론에 항복했다. 왜 단 것을 먹으면 이가 썩을까?
현재 밝혀진 충치의 원인은 단순히 충치균이 입 안에 남은 설탕을 먹고 왕성한 에너지를 얻어 이를 갉아먹음이 아니다. 충치의 원인은 충치균때문이 아니라, 영양의 불균형한 섭취가 원인이다. 치아의 주구성원인 미네랄 성분을 현대인들이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서 충치가 생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특히나 미네랄 부족을 겪는 이유는 편식습관 때문이다. 설탕은 입에 남아서 문제가 아니라, 위에서 흡수되어서 문제다. 혈당을 순간적으로 높이면, 뇌에서는 음식물을 충분히 섭취했다고 생각하고 공복감을 없앤다.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한다. 그 한 예로, 탄산음료에 들어있는 설탕을 먹으면 식욕이 사라지고, 공복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음식을 먹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네랄이 부족해지고 이가 썩게 되는 것이다. 탄산음료의 탄산과 설탕이 이를 녹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릴 적 보았던 치과의 포스터들은 하나같이 ‘입’이라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탄산음료, 사탕, 이를 닦지 않음 등등을 악으로 규정한다. 충치균은 이미 악마와 같다. 입은 충치균이 득실되는 ‘악’의 공간이다. 그리하여 치과의사들은 새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프레스코 벽화의 성인들이 둘렀던 머리 위의 띠처럼 둥그런 반사경을 쓰고 충치를 앓은 아이에게 다가와 치료한다. 이가 썩는 직접적인 원인은 영양의 불균형이고, 특히 미네랄을 못 먹을 때 발생한다. 이를 잘 닦고, 닦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영양이 없을 때, 가난해서 음식재료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설탕보다 더 신빙성 있는 충치의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치약을 만드는 업체가 이 담론을 듣는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규범화된 관행으로 굳어진 ‘이를 잘 닦아야만 충치가 생기지 않는다’는 언술을 끊임없이 소비자들에게 노출시킬 것이다. 이 담론을 ‘헛소리’로 보는 시각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치약을 계속 팔기 위해서 충치균은 언제나 있어야 하고, 악의 공간인 입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치약이라는 선이 그 악한 공간을 정화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3. 통제하는 담론 : 입 안을 보는 것, 아는 것
치과의사가 입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통해서 의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입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볼 수 있는 것은 입에 있는 침과 혀와 이와 목젖 등등이지만 의사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담론의 장, 그 안에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충치이다. 이 의사는 충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하고 눈만을 내놓는다. 코로 맡을 수 있는 구취는 충치를 발견하는데 방해요인일 뿐이다. 특히, 환자, 환자가 아닐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일 수도 있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담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도 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충치치료를 할 때, 얼굴에 천을 덮고, 입만 내놓는다. 그래서 의사는 충치를 발견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문제로 왔습니까?’ 의사는 질문한다.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 첫 번째 질문의 환자는 아직 환자가 아니다. 어디가 아직 아프지 않은 용의자 수준이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에서 환자는 환자이다. 이미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온 것부터 담론의 장에 들어온 환자이기 때문에 의사는 바로 질병에 집중한다. 사람을 건너뛴다. 의사와 환자가 18세기 이전에는 동등한 관계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이 면밀한 관찰과 발견되기까지의 침묵을 거쳐서 진리와 같은 치료방법을 발견해내는 것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인식과 진리 사이의 공간이 언어를 통해 좁혀졌다. 환자의 질병과 치료법 사이의 공간이 언어를 통해 거의 함께 붙어있게 되었다. ‘보고, 안다’에서 ‘보면서 안다’로 이동했다. 본 뒤에 침묵은 없어지고, 보면서 바로 인식하는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침묵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침묵이라는 공간이 삭제된 이유는 두 가지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질병의 증세가 담론의 체계로 정리되면서 ‘C라는 증세는 A병이다.’라는 식의 담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가의 생산성이라는 측면에서 환자가 병이 들어서 생산을 해내지 못했을 때, 생산이 가능한 사람들과 격리될 공간의 필요성이 담론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환자를 집안에서 간호하는 가족까지 생산할 노동력이 제한되면 누군가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병원은 수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회에 나가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을 보존하기 위해 환자를 치료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에 이른 사람들, 생산성을 회복할 기회도 잃어버린 이들에게는 어떤 담론이 생성되어 있는가?
4. 죽음과 치아기록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치아는 28개이다. 사랑니 4개를 포함하게 되면 32개지만, 치아로 나지 않고 매복치 상태로 있을 수 있는 변수가 있기 때문에 28개를 정상적인 성인의 기본 치아 개수로 본다. 앞니는 위와 아래에 각각 네 개씩 나 있는 치아로써 앞니는 주로 음식을 먹을 때에 자르는 역할을 담당한다. 송곳니는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있는 뾰족한 이로써, 음식물을 씹거나 이를 갈 때 생기는 마찰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다음에 앞어금니라고 부르는 작은 어금니 한쌍, 그 다음에 큰 어금니 한 쌍이 있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28개의 치아가 나 있어야 한다. 28개의 치아보다 모자란다거나 혹은 28개의 치아보다 더 많이 났다면 정상이 아니다. 28개라는 숫자는 야곱의 12명의 아들, 이스라엘의 12지파, 예수의 12제자처럼 치아는 28개로 규범화되어 있다. 28보다 많으면 사랑니를 발치하는 식으로, 28보다 적으면 임플란트를 넣는다. 28이라는 숫자에 맞게 이가 뽑히거나 심겨진다.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치아의 개성은 ‘정상인 개수’에서 모자라면 비정상, 넘어도 비정상으로 규정된다. 저마다가 가졌던 치아의 개성은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28개의 치아 구성을 정상이라고 보는 담론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의 신원을 확보할 수 있는 치아의 근거가 생성된다. 법치의학적 관점에서 안용우외 7인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식별이란 “신원불명의 실종자로 알려진 사람에 관한 자료와 비교 평가하여 동일 여부를 결정하는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신원이란 ”어떤 사람을다른 사람과 구별시켜주는 모든 자료의 총채를 말하는 것“으로 신원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는 본적, 출생지, 현주소, 성명, 학력, 연령, 골격, 안모, 피부색, 눈동자색, 모발, 혈액형, 지문, 족문, 구순문, 치아 그리고근래 각국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유전자지문 등이 있다. 법치의학적 개인식별을 수행함에 있어 검사자는 결손치아, 매복치아, 과잉치아, 해부학적 이상, 치아우식증, 잔존치근, 심한 교모, 치경부 마모, 치아파절, 근관충전 상태, 유치와 영구치의 재료와 구별,충전물의 재료, 형태 및 와동, 보철물의 재료와 형태, 교정치료와 관련된 장치와 치열의 정보 등 치아의 특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기록하여야 한다.
개인의 치아는 정상으로 정해진 28개, 충치가 없는 상태, 고른 배열 등을 위해 시술을 받는다. 결국, 개개인이 가진 개성을 잃어버리고 전체에 편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개성이 역설적이게도 죽음 이후에, ‘백골이 된 후’에는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개성으로 평가된다. 정상적이지 않아서 고쳤고, 개성이 사라진 줄 알았던 이가 다시 법치의학적 시각, 그 담론의 장 안에서는 개성이 가득한 치아로 틀바꿈한다. 담론은 이렇듯 시각에 따라서 그 권력이 변화하는 장이다.
5. 나가는 말
미셸 푸코는 ‘임상의학에 대한 관점은 공간, 언어, 죽음의 문제이고 이 것은 시선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고 임상의학의 탄생 서론에서 밝힌다. 푸코의 시각에 동의하여, 임상의학보다 상대적으로 작다고 느껴진 ‘치아’의 담론으로 공간, 언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기술해보았다. 먼저, 본래 자연에서 이뤄지던 충치가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분류되고, 처치해야 할 악으로 규정되는 시각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 질병인 충치만을 바라보는 의사의 시선에 대해 비판하였다. 마지막으로, 비판받아 마땅했던 치아는 28개가 정상이라는 시각이 결국 죽음이라는 상황 하에서 법치의학적 시각 하에서는 유용함이 판명되었다.
이 세 가지의 치아를 둘러싼 시각으로 푸코식의 사유를 해보았다. 푸코식의 사유는 당연하게 전제했던 사유들에 의문을 가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제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게 보이지 않기까지 무수히 많은 전제들을 넘는다. 이 전제들을 넘어갈 때,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인간이다. 치아의 28개의 치아 개수 맞추기에 집중하는 것, 치아에 쓰이는 치약을 많이 팔기 위해 담론을 형성하는 것 모두 비판이 가능한 이유는 ‘당신은’이 빠졌기 때문이다. 푸코가 전제들을 파괴하는 이유는 ‘어디가 아파서 왔습니까?’라고 타인을 섣부르게 규정하기보다 ‘당신은 어디가 불편해서 왔습니까?’라고 물을 줄 아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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