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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에서 탈출하기
: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영화 『쇼생크 탈출』을 중심으로
- 들어가는 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을 읽으면서 『말과 사물』에서 느껴보지 못한, 감히 나 자신이 푸코를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 이해는 나의 경험세계와 푸코의 경험세계가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각 톱니가 만나는 접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푸코의 톱니와 맞지 않았던 나의 이해하는 방식이 푸코를 삐걱이며 읽으면서 깎인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신체형에 관한 묘사와 프랑스의 처형인에 관해 읽었던 나의 이해와 맞물릴 때 신체형을 내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했다. 물론, 푸코가 말하는 것과 내가 이해한 것 사이에 완벽한 일치는 없다.
그러나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권력’이 소유의 개념이었다면, 푸코의 권력과 저항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인 측면임을 알았다. 푸코는 권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감시와 처벌의 공간인 감옥을 가져온다. 이 감옥은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의 한 예이다. 필자는 푸코의 권력의 관점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쇼생크 탈출』(원제 : The Shawshank Redemption)을 해석하려고 한다. 죄수인 앤디 듀프레인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감옥에서의 권력관계를 푸코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는 먼저, 신체와 권력의 관계를 다룬다. 나의 신체를 둘러싸고 벌이는 나와 타인의 권력 다툼을 말할 것이다. 다음으로 자동적이고, 구조적인 권력의 유지를 위해 정하는 규율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이 권력관계에서, 감시와 처벌의 관계에서 저항하고 결국에 권력의 역전을 이뤄내는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신체에 권력 행사하기
주인공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쇼생크 교도소로 이송된다. 그는 이송되자마자 신체의 내밀한 부분을 열어보여야만 하는 항문검사를 받는다. 검사하는 의사를 향해 항문 안에 어떠한 무기류나 반입해서는 안 되는 물건 등이 없는 지 검사를 받는다. 뒤이어 가루 소독제가 앤디의 신체에 뿌려진다. 그가 죄를 지었거나, 누명을 썼는가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그는 하나의 신체로 교도소 안으로 던져진다. 그의 신체는 여러 인물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대상이 되었다.
먼저, 보그스 다이아몬드가 그의 신체에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권력을 시도한다. 그는 게이이면서 부하를 거느리고 다니며 권력을 행사하는 악질이다. 키가 크고 잘생긴 앤디를 자신의 성욕해소를 위한 신체로 복종시키기 위해서 매순간 폭력으로 집단 강간을 시도한다. 하지만, 번번이 앤디의 저항에 부딪혀 성욕을 해방할 수 없자, 보그스는 급기야 자신의 앤디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한다. 앤디는 보그스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성기를 물어버리겠다고 저항한다. 강대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결과로 앤디는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이러한 권력과 저항의 관계는 신체를 매개로 해서 이뤄진다. 푸코에 의하면 “신체를 노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신체가 강제적 복종의 구조 속에 편입되는 경우에 한정된다.” 만약, 앤디가 강제하는 권력에 저항하다가 물리적인 폭력 앞에서 저항하기를 포기했다면, 그는 보그스의 권력 관계 안으로 편입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앤디는 보그스의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또 다른 권력의 장 안으로 들어간다. 앤디는 악질 간수장인 해들리의 권력을 재이용한다. 노역을 마치고 난 뒤, 옥상 위에서 쉬고 있던 앤디는 해들리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해들리은 어느 날 자신의 형이 유산 3만 5천 달러를 남겼음을 알게 된다. 자신의 형이 유산으로 남겨준 재산에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모든 금액을 받을 수 없음을 동료들에게 하소연한다. 앤디는 해들리에게 ‘자신의 아내를 신뢰하고 있느냐’고 질문한다. 앤디의 질문에 자신을 농락한다고 느낀 해들리는 옥상에서 그를 난간에 붙잡아 세운다. 이 때, 앤디는 배우자에게 법으로 정해진 금액만큼 증여가 가능하고 유산 또한 증여를 하면 누진세의 구간을 벗어나기 때문에 세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지식을 알려준다. 그 후 해들리는 앤디를 자신의 권력의 장 안에 두고, 앤디를 못 살게 구는 보그스를 불구가 되기까지 폭력을 가한다. 앤디가 가지고 있던 지식이 해들리의 권력과 만났다. 푸코에 의하면 ‘권력과 지식은 상호 직접 관여’하며, 그렇기에 ‘어떤 지식의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성되지 않으면 권력적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앤디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해들리가 행사하는 권력은 관계함으로 서로의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었다. 앤디는 지식을 권력으로 바꾸고, 해들리는 권력을 지식으로 바꾸는 식이었다.
3. 권력을 유지시키는 규율
앤디는 해들리의 소개로 감옥 내에서 감시와 처벌을 할 수 있는 권력자인 교도소장 새뮤얼 노튼을 만난다. 그는 자신을 성경을 전부 암기하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포장하지만, 불법적으로 제소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한다. 새뮤얼 노튼은 두 가지를 믿는데, 기독교 신자로서 성경이고, 또 한 가지는 제소자의 노동력을 경제력으로 바꿀 수 있는 규율이다. 아래는 그가 항상 하는 환영사의 일부이다.
첫 번째 규칙, 신성모독은 금지된다. 내 교도소에서 주님의 이름이 함부로 들먹여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규칙은 차차 알게 될 거다. 질문 있나? (중략) 난 두 가지를 믿는다. 규율, 그리고 성경이다. 너희들은 여기서 둘 다 받게 된다. 신을 믿어라. 네놈들의 궁둥이는 내 것이다. 쇼생크에 온 걸 환영한다. -교도소장 새뮤얼 노튼의 환영사
노튼은 수감자들을 규율로 복종시킨다. 이 관계는 왕과 신하 사이에 있는 상하관계와는 다르다. 왕은 신하에게 충성에 대한 대가로 일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일정량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노튼의 규율은 푸코가 말하는 규율과 닮아있다. 복종에 대한 대가보다 복종하지 않았을 시에 받게 되는 폭력과 신체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푸코는 이러한 규율을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노튼이 감옥 안에서 제소자들의 신체 활동에 대해서 면밀한 통제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정신적 가치를 지배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각 제소자들이 가지고 있는 체력을 경제력으로 바꾸기 위해서 그들의 복종을 확보한다. 제소자들은 노튼에게 순종한다기보다, 실체가 없는 규율에 순종하고 노튼은 규율의 뒤에 앉아 그 효용성을 맛본다.
노튼은 그들의 신체에서 나오는 노동력으로 교도소 외부에서 불법적인 공사에 동원한다. 값싼 노동력을 거저 얻은 건축회사는 그 과저에서 노튼에게 뇌물을 준다. 앤디가 부여받은 역할은 이 뇌물을 주는 과정에 있다. 유령 인물의 명의를 도용하여 합법적인 돈으로 세탁해주는 일이었다. 최고 권력자에게 도움이 되는 앤디는 교도관들에게 폭력을 당하지 않게 되었다. 앤디의 동료 죄수들을 앤디에게 교도관들과 친구가 되어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이 권력관계 안에서 앤디는 자신의 공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친구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애완동물 정도’라고 말한다. 교도관들과 친구일 수 없는 것은 앤디가 가지고 있는 효용성이 없어졌을 때, 얼마든지 다시 교도관들은 폭력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도관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앤디는 감방으로 돌아간다.
앤디와 죄수들의 감방은 개개인이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게 하고, 권력을 모아 저항하려는 시도를 제거한다. 대개 교도소는 중심을 향해 원형이나 사각형, 오각형으로 건축한다. 이 형태는 각 감방을 나누고, 가운데 탑처럼 서 있는 중심권력자에 의해 감시되기에 용이한 모양이다. 왕권통치시대에는 군중이 화려한 국왕 개인이 가시성이 집중된 형태로 권력을중앙화시켰다면, 근대부터 감옥이나 사회는 권력자는 보이지 않고, 집단화되지 못한 개개인을 권력자가 바라보는 ‘일망 감시시설’이 되었다. 푸코에 의하면 이 감시시설은 “봄-보임”의 결합을 분리시키는 장치이다. 중앙의 탑 안에서 밖에 원형으로 둘러싸인 감옥은 볼 수 있지만, 탑 안은 밖에서 결코 볼 수 없는 구조가 권력을 자동적으로 집중시키는 장치가 된다. 규율은 이 일망 감시시설의 건축법처럼 건축되어 개개인에게 권력자의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이 규율은 절대적이고 부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게 한다.
앤디는 새로 들어온 수감자인 토미에게 진범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노튼에게 결백을 주장하지만, 노튼은 규율을 사용하여 토미를 죽인다. 감시탑이 있는 곳까지 이끌고 가서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사살을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토미가 죽자, 앤디는 저항하지만, 노튼은 앤디를 독방에 가두어 다시 복종하도록 처벌한다. 노튼이 만들어내고, 혹은 이용하는 규율에 대해 푸코는 “규율은 어떤 제도와도, 또한 어떤 기구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그 것은 권력의 한 형태이고 일체의 도구, 기술, 방식, 적용 범위, 목표를 갖고 있는 권력행사의 한 양식이다.”라고 본다.(315) 그렇다면 이 규율에서, 감시, 처벌의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대로 교묘한 규율 뒤에서 감시와 처벌을 하는 중앙권력자에게 착취당하고만 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4. 감시와 처벌로부터 탈출하기
앤디 : 세상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들이 있어요. 거기엔 놈들이 들어갈 수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게 있어요. 당신 것이죠.
레드 : 대체 무슨 얘기야?
앤디 : 희망이요.
레드 : 희망? 하나 알려줄까 앤디? 희망이란 위험한 거야.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어. 이 안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앤디 : 브룩스처럼요?
레드 : 앤디, 자네가 거기에 너무 몰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일종의 망상이라고. 그러니까, 멕시코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는데 넌 여기 있다는 거, 그게 망상이란 거야.
앤디 : 맞아요. 그런 거죠. 가려는 곳은 저기 있는데 난 여기 있다는 거. 간단한 선택에 달린 것 같아요. 부지런히 사느냐, 부지런히 죽느냐.
쇼생크 탈출에서 가장 늙은 역할인 브룩스는 감옥에서 평생을 산 노인이다. 어느 날, 온순하던 브룩스는 헤이우드(앤디의 절친한 동료)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난동을 피운다. 석방이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브룩스에게 규율로 둘러싸인 교도소는 질서가 제대로 잡혀있는 안락하기까지 한 ‘집’이었다. 석방되어 식료품점에서 일하게 된 브룩스는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긴장하고, 지쳐가다가 ‘브룩스 헤이틀런 여기 있었다’란 글귀만 남기고. 자살을 선택한다. 브룩스에게 감시와 처벌의 공간은 곧 집처럼 아늑하여 모든 것이 질서 속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그렇다면 앤디는 이러한 질서에 저항하였는가? 규율로 다듬어진 질서가 결국에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앙권력자들만을 위한 것이고, 자신은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한 도구적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앤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 희망을 꿈꾼다.
앤디가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도소장과 교도관들과의 권력관계를 역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신체와 지식은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깨닫고,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역전될 수 있음을 알았다. 토미의 증언을 가지고 자신을 석방시켜줄 줄 알았던 노튼 교도소장이 오히려 더욱 경비를 삼엄하게 하고, 자신을 독방에 넣자, 권력의 속성에 대해 깨달았던 것이다. 푸코는 이 권력의 속성을 관계로 보고, 그 관계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복잡한 권력 관계의 결과와 도구, 다양한 ‘감옥’ 장치들에 의해 예속화된 신체와 힘, 그러한 전략의 구성요소인 담론의 대상들 사이에서, 곧 중심적이고 중앙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앤디는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노튼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성경책에 비장의 무기를 숨겼다. 노튼은 앤디를 감시할 때, 성경책만큼은 검사하지 않았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암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네한테서 이걸 뺏고 싶진 않아, 구원은 이 안에 있으니까.”라고 말하며, 성경책을 열어보지 않는다. 성경책 안에는 앤디가 감방 벽을 몇 년에 걸쳐서 파낸 작은 망치가 들어있었다. 꾸준하게, 규율로 견고하게 쌓아올려진 감옥에서 감시를 피해서 벽에 균열을 만들고, 구멍을 만들었다. 폭풍우가 치고 번개가 치는 어두운 밤에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서 그 구멍을 통해 탈출한다. 앤디가 탈출할 수 있었던 원인은 브룩스와 다르게 권력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지 않았고, 규율을 절대적인 질서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 역전 가능한 것이라는 희망을 꿈꾸었다.
5. 나가는 말
애완동물로서 스스로 절대적이라고 믿는 규율, 질서, 권력 아래에서 순응하며 살 것인가? 혹은 그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결국, 권력은 절대적인 것들이 아님을 깨닫고, 그 권력 관계에서 탈출할 것인가? 하루하루를 권력자들이 건축한 감옥 안에서 부지런하게 죽어가기는 쉽다. 그러나 그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혹은 탈출해서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체성을 가지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선택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의 신체가 권력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두 번째로, 권력의 한 양식인 규율이 어떻게 자신을 절대적이고, 역전불가능한 질서로 포장하는지를 간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권력관계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감시를 피해서 권력이 규율로 자신을 옳아매었던 것처럼, 그 규율을 역전시킬 새로운 담론을 출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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